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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2012년 10월 9일자 한국일보

한국 한의사들, 네팔에서 '희망의 침' 놓다

 

■ 나마스떼 코리아 의료봉사 현장
진료 시작 전부터 인파 몰려 한의사 3명·자원봉사 20명 사흘간 570명 진료 강행군
열악한 의료환경·정전 속 "너무 많은 환자들 다 돌보지 못해 안타까워"

 

 

베니 국립병원의 신축 중인 건물에 차린 진료소에서 한의사가 주민을 진료하고 있다.

"여기 사는 딸이 한국에서 한의사들이 왔다고 알려줘서 카트만두에서 왔는데, 진료가 끝났다구요? 침 한 번 맞을 수 없을까요?"

지난 5일 오후 네팔 베니의 국립병원 마당에서 만난 룹 데비(77) 할머니는 다리가 아파서 잘 걸을 수가 없다며 애원을 했다. 베니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버스로 10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2만의 작은 도시다. 먼 데서 온 환자를 돌려보내야 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3명의 한의사가 사흘간 진료한 환자는 무려 570명. 접수한 숫자는 980명이나 됐다.

한국 NGO '나마스떼 코리아'(이사장 김웅남)가 3~5일 베니에서 벌인 이번 의료 봉사는 첫날부터 환자가 미어 터졌다. 진료 시작 3시간 전인 아침 7시부터 길게 줄이 섰다. 이른 새벽부터 6~8시간을 걸어온 환자도 많았다. 끝없이 밀려드는 환자에 의사들은 녹초가 됐지만 성의를 다해 진료를 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4명을 포함해 한국에서 간 2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문진표를 작성하고 침을 뽑고 약을 나눠주며 의사들을 도왔다. 주민들은 주로 허리, 다리, 어깨, 목의 통증을 호소했고 어린이들은 영양 실조가 많았다.

진료소는 이곳 병원의 신축 중인 건물 안에 차렸다. 아직 시멘트를 바르지 않아 벽에서 모래와 돌가루가 떨어지는 건물 바닥에 매트를 깔고 환자를 받았다. 베니에 하나뿐인 이 병원은 국립이지만 시설이 몹시 열악해 냉장고도 하나 없다. 병실에는 녹슨 철제 침대가 놓여 있을 뿐 환자들이 덮을 담요조차 거의 없다. 이 병원 의사 로트나 코르카(39)씨는 "분만실과 산모들 병실의 시설이 열악한 것이 특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력 사정이 안 좋아 하루에도 몇 번씩 정전이 되는 바람에 발전기를 돌려야 했다. 베니에 도착한 2일 밤도 정전으로 거리가 캄캄했다.

아버지와 함께 참가한 류연호(18ㆍ서울 서라벌고 2년)군은 "병원비 100루피(1,300원)가 없는 주민들이 무료 진료를 받으러 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냥 돌아가거나 파스 한 장이라도 받으려고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나마스떼 코리아가 네팔 희망심기 사업의 하나로 진행한 이번 의료봉사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하고 돌아온 이 지역 출신 네팔인들이 고향 발전을 위해 만든 단체인 맥디와 베니상공회의소가 힘을 합쳐 마련했다. 나마스떼 코리아 이사로 이번 활동을 이끈 귀화 네팔인 서민수(40ㆍ주한 네팔인협회 전 회장)씨도 베니 출신이다. 1992년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지금은 네팔음식점 4곳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성공한 그는 "딱 한 번 침을 맞고도 훨씬 좋아졌다며 기뻐하는 고향 어르신들을 보니 보람을 느낀다"며 "환자가 너무 많아 꼭 진료를 받아야 할 사람도 못 받고 간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나마스떼 코리아는 네팔에 고아원과 한방진료소, 한국어교육원을 갖춘 복합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번 의료봉사는 행정안전부의 NGO 지원을 받았고 자원봉사자들이 기부금을 보탰다.

 

베니(네팔)=글ㆍ사진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