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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중앙일보] 다와 셰르파, 코리아 드림을 이루다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히말라야 이야기’ <20>

국립민속박물관은 2013년 공무원을 대상으로 국제지역전문가과정을 개설했다. 상반기에 아시아와 유럽 과정, 하반기에 아프리카·중동, 아메리카·오세아니아 과정의 네 주제로 각계의 전문가를 초대한다. 지난 4월 18일에는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이라는 주제로 박로이(35)가 강연해 80여 명의 공무원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박로이의 성은 부인의 성을 딴 것이다. 결혼 전이 아닌 결혼 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동성동본이다. 이름 ‘로이’는 영어강사 시절 사용했던 영문 이름이다. 네팔 본래 이름은 ‘다와 셰르파’다. 셰르파는 네팔어로 ‘동쪽사람들’을 뜻하며, 월요일에 태어나 ‘다와’가 된다. 다와 셰르파는 네팔에서는 매우 흔하고 흔한 이름이기도 하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1978년 5월 23일 2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해 어린 시절 좋은 교육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금도 개발도상국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를 받는 네팔의 일반인들이 그것도 30여 년 전 교육에 관심을 두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중산층인 박로이의 부모는 남다른 교육열로 최고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네팔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학교를 마치도록 했다. 그 덕에 그는 학교대표 축구선수로 활약하면서 디펜드라 경찰 고등학교 졸업한 후 네팔 상류층만이 갈 수 있는 인도의 명문 델리 대학 경영학과에 유학할 수 있었다.

인도유학 시절인 2001년 배낭여행에서 부인을 만나 2003년 결혼했다. 결혼 후 부인의 권유에 따라 이듬해 한국으로 들어와 2006년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서울 생활이 8년째다. 명문대 출신에 네팔어, 영어, 인도어, 한국어, 파키스탄어 등 5개 국어를 하는 ‘외국어 달인’이지만, 8년 동안 행사 때 네팔 기념품을 팔거나 영어강사,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잠시 한국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 종합안내센터에서 외국어 상담원, 주한 네팔대사관 관리부에서 노무 담당 행정원으로 일했지만, 안정된 일자리는 아니었다. 사실 귀화해서 한국국적을 얻었더라도 외국인의 얼굴을 한 그들이 한국에서 취업하는 건 하늘에서 별 따기다. 이주 여성뿐만 아니라 가장의 역할도 해야 하는 결혼 이주 남성에 대한 대책도 더 많이 세워줄 것을 여성가족부에 부탁하고 싶다.

2012년 4월 17일 IBK기업은행 다문화가정 결혼이주민 공채 1기로 7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합격자 가운데 유일한 남성인 그는 자신을 벼랑 끝에서 구해준 기업은행에 크게 감사했다. 접었던 꿈의 날개를 다시 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편견은 여전하다. 조금만 열린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나라 한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 것이다”고 희망을 전한다. 그는 서여의도 지점에서 일한 지난 1년여 동안 ‘매달 2000명 계약’을 달성하고 있다. 국내에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오는 네팔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중소기업중앙회에서 2박 3일의 연수 과정에서 그를 볼 수 있다. 어디든 찾아가 한국 생활의 고충을 공감해주고 불편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다 보니, 어느덧 고객뿐만 아니라 친구가 된 덕일 것이다.

올해 9살이 된 아들도 별다른 차별 없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집에서 한국어로만 얘기한다는 그는 자신의 모국인 네팔의 언어와 문화를 모르는 자기 아들과 친구 아이들이 안타깝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안전행정부가 비영리민간단체에 지원한 NGO 나마스떼코리아 ‘네팔의 심은 한국의 꿈’ 프로젝트에서 네팔어 강사로 활약하며 다문화가정 청소년에 대한 모국어와 문화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한 제안이 현실화돼 비영리사단법인 나마스떼코리아는 2013년 여성가족부 지역다문화프로그램 지원을 받았다. 지금도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이 있는 법륜사에서 ‘네팔문화학교’가 열리게 된 것도 그의 덕이 컸다.(‘히말라야 이야기’<5> 참조)

IBK기업은행은 11일 단행한 하반기(7∼12월) 인사에서 박로이 주임을 5급 행원(정규직)으로 채용했다. 계약직으로 입사해 15개월 만에 정규직으로 특별 채용된 것이다. 잘해도 2년 뒤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정규직 전환은 정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고 한다. 네팔 투자은행(Nepal Investment Bank)과 환거래 계약을 직접 성사시키는 등 해외 업무에 탁월한 실적을 발휘한 그는 기회가 되면 인도지점으로 가서 더 많은 한국중소기업이 인도에 진출하는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몇 년 전 서울시 외국인생활지원과에서 외국인계약직 공무원에 응시했다가 고배를 마신 게 매우 안타깝다고 한다. 당시 채용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필리핀출신의 이쟈스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역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자기가 붙었다면 이라며 농담을 건넨다. 이쟈스민 의원이 이주배경을 가진 다문화 노동자들의 꿈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와 셰르파보다 8년이나 앞선 1998년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그녀는 국격의 제고라는 측면에서 여성대통령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인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09년 몽골 ‘다문화 꾸러미’로 출발해 베트남,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꾸러미가 다문화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올해 완성된 한국 꾸러미는 각종 해외 홍보에 활용 가치도 커서 주목받고 있다. ‘움직이는 박물관 미니 마법 상자’라고 해도 모자란 이 다문화꾸러미의 제작자 가운데 한 명인 이은미 학예연구사는 이쟈스민 의원이 바쁜 시간에도 필리핀 다문화꾸러미 강사로서도 매우 성실하고 재밌게 수업을 운영한 것을 기억하며 고마워한다.

다문화 이주배경을 가진 수많은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자가 우리나라에 어엿하게 함께 사는 것이 고마운 현실이다. 그런데도 정당이 몇 개나 되는 우리나라에, 그것도 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 가운데 아직도 단 1명밖에 안 된다는 것이 오히려 안타깝기만 하다. 이들이 우리나라의 주역으로 지도자로서 더욱 성장해서 우리나라를 더 맑고 밝은 사회로 이끌어 줄 날이 성큼 다가오기를 기대해 본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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